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화 이글스/팀 컬러 (문단 편집) == 명감독들의 무덤? == KBO를 이끌었던 노감독들의 마지막 커리어가 한화로 집중되고 그 말로가 상당히 비참하다는 점에서 한화라는 팀 자체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한화 역대 감독의 우승 횟수를 합하면 무려 '''21회'''이다.[* 김응용 10회, 김성근 3회, 강병철/김인식/김영덕 2회, 이광환/이희수 1회. 그러나 이들은 한화에서 퇴임 이후 '''우승은커녕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감독들의 특성과 한화라는 팀의 특징, 팀이 처한 현실과 그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한국시리즈 우승 등 노감독들의 흘러간 과거와 명성만을 보고 감독으로 선임하는 구단의 잘못된 선택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결과라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현재도 '''명감독들의 묘지, 명장들의 눈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우선 [[김인식]] 감독은 마지막 해 커리어만 나빴지 전체적으로는 최전성기 시절의 [[김영덕]] 다음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감독이다. 05~07년 간의 3년 연속 PS 진출과 한 번의 준우승은 [[김인식]] 감독이 단기전에 강하고 [[송진우(야구)|송진우]], [[정민철]], [[문동환]], [[구대성]]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가운데 혜성과 같이 등장한 [[류현진]]이라는 투수가 있어서 가능했다. 거기다 특유의 거포 중심 스타일 야구는 당시 작았던 대전야구장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렸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리빌딩에 무관심했고, 믿음의 야구의 이면에는 인색한 신인 기용과 주축 선수 혹사라는 어두운 면이 있었으며 구단 자체적으로도 몇 년간 드래프트에서 4~6명만을 지명하는 등 신인 수급이 부족했고 2군에 대한 투자도 미약했다. 결국 주축 노장들의 은퇴시기와 맞물리며 투수공동화 현상이 왔고, 그것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김응용]] 감독의 경우 화려한 선수진을 바탕으로 하는 선 굵은 야구를 추구한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모습이라면 그렇다.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 시절 모기업의 한계로 리빌딩이 강제로 꾸준했던 이력이 있다.] 하지만 2013년의 한화는 80~90년대의 해태, 2000년대 초의 삼성과는 달리 그런 선수들과 거리가 있는 리빌딩이 필요한 선수층이었다. 또 주축 에이스 투수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은 큰 타격이 되었고, 직전 시즌 5선발로 뛰었던 [[박찬호]]의 은퇴, 코어 유망주 [[양훈]]의 입대, ~~송신영의 특별지명과~~ 한화 특유의 투수용병의 부진,[* 다만 선술했듯 바티스타와 이브랜드의 세부 스탯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감독직을 수행하지 않았던 [[김응용]] 감독의 실전감각 문제까지 더해지며 결국 개막전 포함 13연패(12시즌부터 이어진다면 14연패), 2년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로 감독직을 마치게 되었다. 시종일관 자기 팀을 깎아내리고, 경기를 8회부터 자주 던져버리는 것은 물론 야구 안보고 창피해서 드라마나 봤다는 발언 등으로 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은 덤. 그러나 그 때에 이르러서야 서산의 2군 체계가 완성되는 등 지원 자체는 [[김성근|후임]]보다 너무도 열악했다. 이후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직접 선임한 감독, 팀다운 팀을 만들어주는 감독, 육성과 수비 강화에 자신있는 감독으로 기대를 모았고, 2015 시즌 전반기에는 마리한화 열풍을 일으키면서 그러한 희망을 봤다. 하지만 2010년대의 한화는 2000년대 후반의 SK와는 달리 여전히 팀 전력이 얇고 평균 연령층이 높았고, 여기에 [[김성근]] 특유의 팀을 쥐어짜는 방식의 운영 + 김성근 사단을 중심으로 한 전횡[* 경기 코칭스태프 이외에 트레이닝 및 재활훈련 체계에도 문제가 생겨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40195|기자의 체험기]] 결국 홍남일, 강성인 트레이닝코치도 김성근의 경질과 함께 같이 짤렸고 2019년에도 프로야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2018년부터 [[후지오 요시후미]] 코치가 1군 트레이닝코치로 부임하면서 문제 해결.]이 더해져 2015 시즌 후반기에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또한 지나친 전권부여는 감독으로 하여금 자신의 철학만을 내세우게 하였고, 그 결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야구와 독재식 팀 운영을 통해 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성근 신화의 거품이 걷힌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고양 원더스]]의 외국인 투수 혹사 등 민낯도 그제서야 드러났으니.(정확히는 작게나마 관심이 있었지만 묵살당했던 것이지만) 그러나 한화가 2019년 다시 부진을 보이자 [[노리타(김성근)|김성근 감독 추종자들]]이 다시 활개치기 시작하면서 야구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20시즌 팀이 그러한 비난을 상쇄하기는커녕 김성근도 안했던 18연패를 찍으면서 이들의 활동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이태양]]의 수술,[* 다행이 2016년에서는 돌아와서 후반기 1선발을 맡아가며 활약했다. 물론 빠른 복귀라 2017년에는 부진했고, 재수술한 후 불펜으로 활약했으나 2018년엔 10년만의 가을야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이 던지다 결국 영영 탈이 났다.] [[미치 탈보트]]와 [[셰인 유먼]], [[배영수]]와 [[송은범]]의 동시부진으로 시즌 초반 구축했던 선발투수진에 균열이 생기고, [[임준섭]], [[윤규진]]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비상식적으로 불펜을 많이 쓰는 야구를 하게 되면서 최악의 혹사감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2016 시즌에서도 [[2016년 송창식 벌투 사건|현실이 되었고]], 프런트, 2군과의 갈등을 겪은 끝에 2017년 5월 23일 전격 경질이 발표되면서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만남도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되었다. ~~으리~~ '의리'를 중시해서 어지간해서는 감독의 임기 보장을 해줬던 빙그레-한화 사상 '그룹감사' 후 경질당한 최악의 케이스.[* 다만 한대화도 우승을 목표로 하라는 높으신 분들에 불편해하는 내색을 보인 뒤 환승없는 8호선을 타던 2012년 8월 중 경질당했다. [[한용덕/2020년|구단에서 대놓고 수석코치 교체를 강요하는 등 대놓고 감독을 잘라버리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때였다.] 결국, 이 명감독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망침과 동시에 만든 비밀번호는 구단의 레전드이자 신임 감독인 [[한용덕]] 체제에서 2018년 피타고리안 승률을 씹어먹는 우주의 기운이 모여 '일단'은 끊겼다. 하지만 예상 외의 호성적이 오히려 독이 되면서 2019년 이후 코칭스태프와 에이징 커브가 오던 일부 베테랑들과의 갈등이 폭발, 2020년은 완전히 말아먹고 6월 초반 경질되었다.[* 사실 이러한 조짐은 2018년 중반 한용덕 감독이 계급장만으론 1군에 못온다고 발언하거나 돌연 주전 3루수를 2군으로 내리는 등 여러 차례 보였다. 시즌 후 FA 선언한 3명에게 단장이 FA 선언하고 시장에 나갔으면 한화 선수는 아니라는 발언까지 나오는 등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나 호성적에 취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 계속 연패를 끊지 못하다가 간신히 연패를 끊는다. 구단은 다시 명감독을 선임하려는 유혹을 끊기 힘들것으로 보였으나 시즌 후 대대적인 팀 개편 의지를 보이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인 [[카를로스 수베로]]가 선임되었다. [각주] [[분류:한화 이글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